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화가 백연희의 이탈리아 미술 기행 2] 무궁무진한 명작들로 차고 넘치는 도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화가 백연희씨가 밀라노와 베로나에 이어 스케치북과 카메라를 들고 피렌체로 갔다. ◇르네상스의 영광=벌써 여행의 반이 지나고 오늘은 영어권에선 플로렌스로 부르는 피렌체 행 기차를 탔다. 허름한 기차역 낡은 기차는 대조적으로 번듯하고 깨끗한 한국 무궁화호 기차를 그리게 한다. 피렌체로 가는 길은 가파른 산등을 깎아 내었기에 계속되는 굴 속을 들락날락하며 푸른 절벽을 달려간다.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적시며 퍼져온다. 이번 여행의 초점이 되는 피렌체는 아무리 여러 번 와도 또 다시 놀랍고 샘 솟는 예술 자원이 맘을 사로 잡는다. 피렌체는 ‘아르노강의 아테네’ 라고 불릴 만큼 역사와 문화가 희랍과 대등하다. 이 도시는 11세기 줄리어스 시저 시절부터 그 부유를 이어 받아 단테와 함께 인간성과 14세기 르네상스가 태어난 곳이다. 우피치 미술관, 아카데미아, 산타 크로체, 피티 팰리스 등 수없는 미술관과 성당엔 지오토부터 시작하여 마사치오, 프라 안젤리코,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까지 명작들이 무궁무진하게 차고 넘친다. ◇우피치 걸작들=인류의 역사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지나간 위인들의 반짝이는 염원을 우리가 다 읽을 수 있다면 지금 눈 앞에 있는 예술 속에 담긴 작가의 정신과 증언, 피나는 노력을 조금 이라도 알아 들으련만…. 그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것 만으로는 너무 부족하고 부끄럽다. 무엇보다도 프레스코 벽화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배운듯 하다. 특히 산마르코 성당의 성직자 방은 4평 정도인데 방마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 벽화가 작은 방을 눈부시게 한다. 이 도시의 심장과 같은 우피치 미술관 여러 방 중에서도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과 ‘봄’ 앞에서는 관객의 발이 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져 나가지 못한다. 보티첼리는 과연 어떤 별에서 왔기에 이런 초 인간적인 미를 만들 수 있었나! 따뜻하고 매끈한 비너스의 피부와 옷자락이 내 몸에 닿을 듯 전율이 온다. 그동안 너무 많은 피에타(*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와 십자가 수난을 보는 동안 주제 중압감에서 갑자기 보티첼리의 즐거운 비너스를 만나는 것이 가슴을 환하게 한다. 대개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 미술 작품들은 거의 다 그 주제가 종교, 왕가 초상화로 지금 현실과 너무 달라서 지루하다고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술의 진실은 고양된 정신을 최고의 미적 수단으로 시각화하는 것이기에, 위대한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보는 이의 가슴에 호소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모든 감각의 절정에 이르게 된 순간은 미켈란젤로 조각 앞에서다. 미완성 작품이라고 불리는 것은 더 아름답다. 대리석 ‘돌 속에서 살아나오는 생명’이 살로 변하는 기적, 이것은 예술인가 마술인가…. 돌을 깎는 그의 강렬한 손 움직임과 머무는 한 순간, 이미지와 공백과의 싸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치열한 작업…. 그리고 피에다(PIETA) 앞에서 받는 충격과 피할 수 없는 고통, 종교를 넘어선 인간성, 어머니와 아들, 여기에 무너지는 육신과 정신이 관객을 비틀거리게 한다. ‘완벽한 미’를 진실이라고 말한다면 ‘다비드상’에서 느끼는 육체와 영혼의 절정이 그것이다. 그 팔의 핏줄에서도 대리석은 부드러운 흰 빛으로 생명을 입고 피어 오른다. 신은 때때로 인간 속에 들어와서 무슨 방법으로든지 ‘미’와 ‘진실’을 얘기하지만 표현하는 재능은 특정 인간에게만 부여된다. 또한 이 많은 예술가를 길러내고 그 기상을 지켜온 피렌체 메디치 가문이 이룬 공적을 온 인류가 누리고 있다. 그 왕가가 살던 피티 궁전과 그 앞을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강은 우리를 머물게 한다. 과연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을 준비할 수 있을지 그 능력과 복을 소원해 본다. ☞◇백연희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스티벌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한국과 미국에서 개인전을 30여회 가졌다. 백씨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새너제이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현재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2010-09-16

[화가 백연희의 이탈리아 미술기행 1] 보물상자 여는 순간처럼 휘황찬란한 미술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작업하는 화가 백연희씨가 최근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패션에 밀리지 않은 채 미술이 숨쉬는 밀라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 베로나, 그리고 르네상스 도시 피렌체를 돌며 미술품을 만나고, 스케치를 했다. 백씨의 미술 기행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미술 애호가들의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Art Lover’s Tour’라는 이름 아래 열댓명의 중년들이 오랜만에 이탈리아로 향했다. 모두들 의기에 차서 스케치북 서너 권과 수채물감을 지닌 채 두툼하고 편한 샌들 차림으로 밀라노 공항에 도착했다.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지만 이탈리아는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건조한 토질이 한국과 비슷해 반도 민족의 성질이 그렇듯이 풍부한 감성과 표현에 성격도 활달하다. 음식과 가족, 특히 어머니 중심의 생활습관 등이 어딘지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포플러 나무가 줄지은 들판을 달리는 기분 역시 한국 시골을 연상케한다. ◇성(聖)과 속(俗)의 랑데부=대서양을 밤 새며 건너 온 우리 일행은 무거운 몸을 길가의 수수한 모텔에서 쉬게 하고 아침부터 미술관부터 찾았다. 브레라(BRERA) 미술관은 역사적 고전이 상당히 많은 곳이었다.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들로 이어진 속을 더듬는데, 그 아련한 고화들 앞에 우뚝 선 TV 스크린이 눈에 띄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비디오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스크린이 아닌가.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프레스코의 장벽 중간에 이런 이물질이 뛰어들 수 있는가! 뒤로는 지고한 ‘십자가의 수난’이 자욱하게 보이는데, 비올라의 사막·물·불 타는 성전의 영상이 강풍처럼 불어오고 있었다. 또 프랑스 작곡가 에드가 베레즈(1883∼1965)의 음악을 동반한 1994년 작품에선 테이블 위에 놓인 물 한잔이 슬로모션 영상 속에 쏟아지며 물 속으로-사막으로-불로 변화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화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열정, 끈질기게 근원을 향하는 정신성에 관객은 빨려 들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근현대와 르네상스의 미술을 조합, 재편성시킨 BRERA 미술관 큐레이터의 대담한 창의성에 박수를 보낸다. ◇죽음을 보는 시선=다음 날 찾아간 곳은 생전 처음 본 괴이한 정령의 나라였다. ‘Cimetere Monumentale’이라는 공동묘지인데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실제 사이즈 조각으로 만들었다. 묘지 위엔 무대가 설치된 듯 각종 의상의 주인공들과 천사들이 연극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그 주변엔 수백년 된 전나무들이 늘어져있고 어디서 알지 못할 음악이 새어 나오는 듯한 분위기이다. 여기에서 본 동양과 서양 특히 이탈리아 사람의 표현성은 그 사고의 중심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느껴진다. 동양에서 죽음이란 완전히 추상적이어서 흙과 비석 하나로 모든 것을 침묵 속에 말한다. 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죽음 속에서도 삶을 반복하며 설명하며 희망을 표현한다. 그렇기에 우리 선조들은 흰 종이에 묵화 한 줄로 인생을 얘기하는 반면 서양예술은 오색 찬란하고 젊은 피부와 인간을 만류의 영장으로 찬양하는가 보다. ◇보물궤 같은 미술관=패션도시로 손꼽히는 밀라노는 근대적 상업도시의 기분이 짙다. 이 가운데서도 깊은 역사가 남겨 놓은 문화유산이 곳곳의 개인 미술관에 잘 유지 되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밀라노 북동쪽에 위치한 개인 미술관 중 폴디 페졸리 미술관을 손꼽는다. 19세기 말 쟌 지아코모 폴디 페졸리가 개방한 이 저택에 들어서는 기분은 어려서 읽던 ‘보물섬’에 나오는 보물궤의 뚜껑을 열어보는 순간처럼 휘황찬란하다. 그림 조각은 물론 소장품들 특히 각가지 기묘한 시계들, 진귀한 보석, 오묘한 유리 제품의 무궁무진한 진열을 보면서 그 왕가의 부귀와 화려한 세월이 지금 내 앞에 유리장 속에서 손짓하며 얘기하고 있다. 초콜릿 색깔의 통나무 위에 수를 놓듯이 조각이 새겨진 육중한 문을 지나고 사방이 스테인글래스로 프리즘 같은 침실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이 방에서 지금 죽어도 좋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게 나뿐만은 아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그 방에서 주인 페졸리가 운명했다고 한다. ◇줄리엣의 발코니=오늘 아침식사도 어느 호텔이나 똑같이 빵과 과일, 햄, 시리얼, 삶은 계란 등 다 갖추었지만 일주일을 반복하다 보니 국밥 생각이 난다. 미술관과 성당을 하루에 세개씩 다니려면 든든히 먹지 않으면 못 당한다. 물병과 카메라, 화구까지 메고 하루종일 걷자니 군대 못지않을 것이다. 그래도 매일 아침 스케치북과 일기장을 들고 미소 지으며 버스에 오르는 중년 여자들, 이들 중에 현역 작가는 서너명이고 대부분은 과거에 미술학교에 다녔거나 현재 미술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들이다. 월요일 아침 일행 18명은 베로나를 향해 녹색 벌판을 가로 지르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꼭 초록색 붓 끝을 하늘로 높게 세워 놓은 듯 줄지어서 따라온다. 한때 로마 제국의 강력한 도시였던 베로나는 다정하고 품위 있는 땅, 단테가 살던 집,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곳이다. 그 줄리엣의 발코니는 지금도 쉬지 않고 비벼대는 관광객의 카메라를 내다 보고 있다. 지나간 시인의 도시, 그리고 나치와 2차 세계대전의 고통을 견디어낸 아디지강, 그 강물 위에 거대한 벽돌성 ‘캐슬 베키오’는 마치 붉은 띠를 두른 듯 만리장성을 연상케하면서 수많은 예술품을 가슴 가득히 품고 당당하기도 하다. 묵묵히 성벽 밑을 흐르는 녹색 강물 위로 비둘기들이 즐거운 원을 그리고 있다. 해지는 강물 위에 흔들리는 성벽, 햇볕 부서지는 포플러 나무를 바라보며 우리는 무언가 이 순간을 종이 위에 표현하려고 돌담에 기대어 서있었다. ☞◇백연희씨는…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스티벌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한국과 미국에서 개인전을 30여회 가졌다. 백씨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새너제이미술관 등지에서 소장돼 있다.

2010-09-09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